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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음악사회

2015년 43회 범음악제 / 범음악제에 대한 안타까움 그리고 바라는 것

by 철학하는 광대 2016. 8. 27.

2015년 43회 범음악제, 작곡가로서의 참여. 

범음악제에 대한 안타까움 그리고 바라는 것.


작년에서야 처음으로 한국에서의 작품공모(콩쿨이든 음악제든 뭐든)에 지원을 했다. 카테고리도 맞았고 한국에서 작곡가로서 시작할 수 있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싶어서였다. 내 곡이 신진작곡가 부분에 당선되었다는 소식을 받았을 땐 얼떨떨했다. 이렇게 한국에서 처음 작곡가란 이름으로 곡 발표를 하나 싶었다. 그 때까지만 해도 좋았다. 그러나 장소와 연주 시간 그리고 리허설 일정과 곡발표를 마치며 범음악제를 다시금 경험할 땐, 가면 갈 수록 부정적인 시선 밖에 안 생겼다. 끝나자마자 감정적으로 범음악제 홈페이지에 '범음악제의 발전을 위한 비판'을 쓰려다가 말았다. 결국 감정적으로 쓴 글은, 감정적으로 밖에 안 남는다는 걸 알기 때문이었다. 1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에서야 나름 객관적인 시선에서 작년 범음악제에 대한 글을 이렇게 공개적으로 쓴다. 


내가 기억하는 범음악제는 (아직 대구나 통영을 못 가봤지만) 가장 크면서도 들을 것이 많은 음악제였다. 처음 언제 갔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2007년도 범음악제의 모든 음악회를 거의 혼자 다 봤던 기억이 있다. 예술의 전당이 가지고 있는 그 고퀄리티의 음향 안에서 현대음악을 듣는다는 건 정말 작곡가로서는 무대에 서고 싶게 만드는 일이었다. 언젠가 한번 정기적으로 "대한민국 실내악 작곡제전" 을 방문할 때, 그 좋은 리싸이트홀에서 30-40명 남짓한 관객 속에, pp 로 연주되는 곡에 중년 아저씨의 mf 코곯이가 즉흥연주를 해서 청중의 웃음을 유발한 적도 있지만, 곡이야 어쨌는 그 코 고는 소리가 아주 잘 들릴 정도의 음향 시스템은 정말이지, 작곡가, 연주가로서 서고 싶은 무대가 아닐 수 없었다. 게다가 작은 편성 뿐만이 아니라 큰 편성도 많이 있었어서 참 기대를 많이 한 범음악제였다. 

2015년에 처음으로 세종문화화관 북서울 꿈의 숲 아트센터로 장소를 바꾸었는데 그곳 또한 음향은 정말 고급이었다. 야외를 비롯해, 하우스콘서크나 혹은 음향 시설이 전혀 안된 빈 방에서의 연주를 직접 해보기도 하고 보기도 한 나로서는 그 홀이 참 탐스러웠다. 단연컨대, 범음악제에서 곡 발표를 하면서 가장 좋았던 건 홀 그 자체였다. 꿈의 숲 아트센터의 위치가 조금 아쉽기는 했지만.


범음악제 당선 이후, 한글과 영문으로 프로필과 사진을 요구하는 시점에서부터, 연주자들과의 연락 방식에서부터 삐그덕 거리는 면이 없지 않아 있었다. 프로필 요구하는 메일을 무려 3번을 받고 답장을 했었어야 했는데(수정을 요구하는 것도 아닌, 단순히 프로필 요구였다) 전혀 다른 세개의 메일에서 내용이 같은 메일을 받았다. 그 때 이미 한사람이 아닌 여러 사람이 프로그램 작업을 한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물론, 음악제인만큼 여러 공연이 있고 수많은 프로필을 모으고 편집해야하지만 그 사람들 간의 소통이 없었던 것인지 나는 같은 메일을 다른 사람에게 여러번 보내야했고 그것에서 이미 의문이었다, 일이 도대체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연주자와의 연락도 내쪽에서 물어본 후 직접 나서서 했어야했다. 여기까지는 그래도 큰 문제가 있지는 않았다. 연주자들이 지휘를 요구해서 지휘자가 섭외된 사실을 나중에 들었고, 리허설 참가 시간도 생각보다는 더 짧았지만 현대음악 연주회에서 얼마나 많은 작곡가들이(학생이 연주하고 작곡과 선생님 입장으로 리허설 때 계속 연습시키지 않는 이상) 곡 발표 때 얼마나 많은 리허설을 할 수 있을까. 주변에 범음악제를 작곡가로서 경험한 사람들에 의하면 정말 30-60분 수준이었다. 그에 비하면 많은 리허설에 작곡가로서 참여한게 사실이지만, 연주자들이 그 단기간 안에 연주하는 연주곡의 갯수를 알았을 땐 그럴 수 밖에 없다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비단 한국 뿐만이 아니다. 비단 현대음악계 뿐만이 아니다. 그러나 이, 노동처럼 여겨지는(예술을 하는 행위 또한 노동이긴 하지만-추가하자면 벌이가 되지는 않는 노동) 세계를 당사자들, 즉, 작곡하고 연주하는 사람들이 바꾸지 않으면 세상은 결코 바뀌지 않는다. 예술이란 것은 섬세한 작업이고 특히 현대음악은 더더욱 예민한 것이라서 더 집중해야하는데, 하루종일 리허설하고 그것도 한 곡당 몇시간 되지 않는다면, 시간을 더 늘리고 그 대신 돈을 더 요구하는 그런 사회가 되어야하는데, 되려 시간이 지날 수록 리허설 시간은 줄고 곡의 난이도는 어려워지고(단순히 테크닉적인게 아니라 개념적으로나 곡을 이해하는 방식 혹은 미학적인 부분에서 현대음악은 항상 새롭게 쓰여지기 때문에) 돈은 줄고.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지만, 그런 환경을 한국에서 겪으며 작곡가로서 연주자들한테 미안했고 고마웠고 그런 환경이 안타깝기 그지 없었다. 이제는 바뀌어야할 때가 아닌가. 


(사회적인 문제를 논하기엔 글이 삼천포로 빠져 허우적대며 못나올 것 같아 범음악제에 아쉬운 점으로 다시 돌아간다.)


나는 2015년 범음악제 중, 내 작품이 올라가는 당일 이외에 다른 연주회를 두개 더 방문했다. 처음 방문했을 때는 주말 저녁인데도 불구하고 처참했다. 2015년 처음으로 모니터링 요원을 모집하기도 했지만, 몇 백석 중에 20-30명을 채운 관객 수는 그야말로 안타까울 수 밖에 없었다. 공연장 위치도 위치였지만 이렇게 처참하게 공연장이 빈 범음악제는 처음이었다(물론 그 전에도 그랬었을 수 있지만). 얼마나 많은 광고를 했었을까를 의심하게 되고, 전국의 모든 현대음악을 하거나 좋아하는 사람들은 어디갔나 싶었다. 연주자들의 소리가 공기를 통해 그 진동이 전해지지만, 조금 더 많은 귀가 있었으면 했을 정도였다. 아무리 많은 것이 바뀌고 새로운 시도를 추구한 2015년 범음악제였지만 안타깝기 그지없었다. 그나마 합창단 있는 공연이 꽤 많은 객석을 차지했지만, 어린 친구들이 무대에 서면서 그 가족들이 대부분 객석을 채워줬지 않나 싶었다. 

작곡가로서 처음으로 한국에서 곡발표를 하는 날은 더 가관이었다. 평일 오후 4시에 연주회를 하면, 도대체 누구보고 보러오라는 건지. 지인들에게 얘기를 해도 다들 대부분 일하는 중이었다. 대관료나 시간의 문제였을까. 신진작곡가라는 이름으로 작곡가들을 뽑았으면 조금 더 나은 시간대를 주었어야한다. 이거야말로 평일 4시에 일이 없고 현대음악을 좋아하시는 분 알아서 광고 찾아서 오세요, 수준이었기 때문에. 그 와중에 프로그램은 더 문제였다. 내가 영어 이외에 다른 외국어를 할 수 있어서가 아니다. 한국에서, 윈도우즈 운영체제에서 다른 나라 언어로 타자기를 쓸 수 없어서가 아니다. 정말 많이하는 실수지만, 범음악제 프로그램에서는 절대 생각치 못했던 실수다. 독일, 프랑스 외 비영어국가에서 공부하고 졸업한 학생이 얼마나 많은데, 악센트 표기(') 움라우트(ä, ö, ü) 표기를 다 빼먹고 쓸 수 있었는지. 누구한테 이 일이 맡겨졌고, 과연 최종 검토를 누가 했는지. 단 한명이라도 비영어국가에서 공부를 한 사람이 있거나, 고등학교 때 제 2외국어로 배웠든지 그런 사람이 잠깐이라도 검토했었으면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 물론 한국에서 한국어로 표기하는게 가장 좋지만, 어떤 단어가 모두 한국어로 정확하게 번역이 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원어 그대로 쓰기도 하는데 그럴 땐, 원어 그대로 표기해야지 아닌 경우에 자칫하다간 전혀 다른 뜻의 단어가 되기도 하기에 주의해야하는데, 한국에서 범음악제란 이름을 가진 음악제가 이런 실수를 한다는 건 정말 생각치 못한 일이었다. 물론 오타라는 것은 언제든 그리고 누구나 범할 수 있는 실수이고 그러기에 첨삭하고 편집하는 사람이 필요한 것인데, 이건 오타 수준이 아니라 외국어 표기에 대해 전혀 생각치 않고, 영어인 것처럼 알파벳으로 다 써버린 경우였다. 모르는 것이 있으면 배우는게 일이지만, 인쇄소에 넘어가기 전에 누구 하나 검토해서 바로잡은 사람이 없었다는게 정말 안타까울 뿐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연주회를 마쳤고, 내가 나서서 '작곡가'로서 다른 작곡가들과 어울리고 인사나누지 못한 것은 사실이지만 범음악제라는 타이틀이라면 작곡가들끼리의 대담이나 더 큰 다른 무언가를 열 수 있지 않았을까. 

모니터링 요원들이 체크하는 문항들도 얼핏 봤지만 그게 범음악제 발전에 얼마나 큰 도움이 되었을지는 앞으로의 행보를 보면 되지 않을까 싶다. 조금 더, 작곡가들과 연주자들을 위하는 음악제가 되고, 현대음악 작곡가들의 소통이 이뤄지는 음악제가 되었으면 좋겠다. 신진 작곡가와 기성 작곡가들의 만남, 그리고 음악제가 끝나고 이뤄지는 리뷰와 앞으로 음악제가 나아갈 방향에 대한 회의. 그런 것들이 오픈되어 이뤄져야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꿈꾸기 때문에. 

2016년 범음악제는 아쉽게도 가지 못하지만, 재밌었다고, 그러나 이런 부분은 아쉬웠다고 주변의 누군가가 음악제 구조와 함께 곡에 대한 비평을 해주기를 바라며.


(추가로 구체적인 보완점을 제시하자면:

* 음악회 시간의 적절한 분배. 오후 시간 연주회는 주말에만, 평일은 오로지 19시나 20시 연주회.

* 연주자들의 조금 더 좋은 환경(적은 곡의 갯수, 많은 리허설 시간)

* 프로그램과 편집이 있어서 정확하고 통제되어 일이 반복되거나 큰 오류가 있지 않도록

* 신진 작곡과와 기성 작곡가들간의 더 많은 교류(음악제 내에서 대담이나 청중과의 만남이나)

* 홍보마케팅이 조금 더 활성화되길

* 음악제가 끝난 후, 작곡가들간의 곡 그리고 음악제 비평, 평론가의 전문적인 리뷰 섭외)


20160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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