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현대음악/리뷰

제 31회 대구국제현대음악제 리뷰 | 2. 개막연주회

by 철학하는 광대 2021. 9. 12.

2021년 8월 25일 오후 4시 대구 콘서트하우스의 챔버홀에서 음악제의 시작을 알리는 개막연주회가 시작되었다. 여느 다른 연주회와 같이 이 연주회에 입장하기 위해서도 체온 체크와 등록이 필수였다. 어쩌다 이런 세상에 살게 되었을까 싶으면서도 이 힘든 시기에 열린 음악제이기에 더욱 그 가치를 음미할 수밖에 없었다. 관객들은 팸플릿이나 종이로 된 프로그램북 없이* 티켓만 가지고 홀에 입장하게 되었다. 붉은색 객석의자와 노란 조명에 비치는 갈색의 무대, 적절하게 유지되는 시원한 온도, 그리고 그에 적합한 청각적 자극에 음악회에 대한 기대가 한껏 부풀었다.

 

여섯 작곡가의 여섯 곡으로 이루어진 이 공연의 시작은 김승림 작곡가의 multipercussion을 위한 곡 “두드리다percuss” 였다. 티켓을 들고 챔버홀에 들어섰을 때 십 수개의 타악기가 무대에 세팅되어 있었다. 저 많은 타악기가 어떤 소리를 어떤 결합으로 낼지 궁금했다. 

곡의 시작은 마치 각 악기들의 자기소개 혹은 작은 파편의 나열 같았다. 약하고 센 음량을 반복하면서 각 악기들이 자신들을 여유있게 소개했다. 유일무이하게 정확한 음고를 가지고 있는 비브라폰의 본인 소개는 위로 올라가는 빠른 패시지로 이루어졌다. 두드림의 ‘타악’이 중심이 되다가 멜로디적인 음형을 처음 발견한 순간이었다. 나열의 연속이 이어진 후 각 악기들은 서로 결합을 하기 시작했다. 이 결합에서 비브라폰이 음고가 정확하지 않은 다른 타악기들에 과연 어떻게 대항할지 궁금했다. 각 악기들의 조합은 변화를 일으키며 합주를 이뤄나갔다. 때론 어떤 악기가 중심이 되기도 하고 때론 여러 악기들이 같은 무게로 등장하기도 했다. 매 순간의 합주가 빠르게 지나갔다. 곡이 양철 소리를 내는 물체**와 사이렌 소리에 집중되었을 때 전자음악이 추가되어 장면의 전환이 이루어졌다. 길게 유지되진 않았지만 지속적인 악기들의 결합 이후 환기될 수 있는 구간이었다. 이후 여러 타악기들이 연속적으로 결합되고 해체되었다 마지막에서는 작은 북이 홀로 고조되며 음악의 끝을 제시한다. 어디론가 더 울려야만 할 것 같은 작은북의 소리가 홀 전체에 잔향으로 남으며 제31회 대구국제현대음악제의 첫 곡이 끝났다. 악기의 셋업만으로도 기대감을 불러일으켰고 타악기 소리의 다양성과 통일성이 밸런스를 유지시킨 곡이었다. 

타악기 주자가 악보를 넘기거나 말렛을 바꿀 때 호흡이 끊기는 아쉬움이 남았다. 악보를 넘기거나 말렛을 바꾸는 행위는 타악기 주자에게 피할 수 없는 음악 외적인 행동이지만 이조차 연주 안에 녹아들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현대음악에서 특히 타악기 주자의 육체적 움직임은 다른 악기 연주자들보다 훨씬 다양하며 그 움직임 자체가 하나의 안무가 될 수 있을 정도로 중요하다. 따라서 다른 연주자들보다 특히 음악 외적 행동을 할 때 더 많은 주의를 기울여야한다. 악보를 넘기는 행위 자체가 음악 안에 녹아들었을 때의 희열감은 연주자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다. 연주 자체는 좋았지만, 다른 아쉬움이 들었던 그런 첫 시간이었다.

 

두 번째로 이어진 편도아 작곡가의 “Score in C” 는 절대음감으로 듣는 사람이라면 제목에서부터, 그리고 ‘C’로 시작하는 곡의 처음부터 굉장히 직접적으로 전달하고자 하는 곡이라는 생각을 했을 것 같다. 유니즌으로 시작된 이 곡은 단 7도의 음정을 악기들 안에서 제시한다. 불협화음이지만 그중에서는 비교적 협화음적인 비율을 보여주는 단 7도가 제시된 후, 증 4도 격인 ‘파#’이 등장한다. 어찌 보면 전형적인 20세기 초반에 사용된 음정적 관계를 사용했다 볼 수 있다. 곡이 끝나갈 부분에는 피아노가 다시금 ‘도/C’를 제시하고 동시에 첼로와 클라리넷이 ‘레’와 ‘시를’ 연주한다. 한 작곡가가 기본적인 음정의 틀 안에서 어떻게 곡을 접근했는지를 보여줬다. 특히 마지막에는 첼로에서 배음 주법을 보여주며 ‘C’라는 음의 배음에 집중하였다. 곡의 초반이 유니즌을 통해 ‘C’라는 음 자체에 집중했다면 마지막은 그 ‘C’ 안에 어떤 음들이 숨겨져 있는지 보여주려는 느낌이었다.

곡 전체 안에서 첼로의 소리가 굉장히 작아서 밸런스가 잘 맞지 않는 것이 아쉬웠다. 음향적 밸런스는 오로지 공연이 되어지는 홀에서만 리허설이 가능한 부분이고 이 또한 객석이 채워짐에 따라 변하는 수이기 때문에 연주자들이 공연 안에서 즉각적인 반응을 해야 하는 부분이다. 그렇기 때문에 밸런스는 어려운 부분이며 그래서 공연이 재미있는, 살아있는 것이기도 하다.

추가로 피아노 연주자는 악보를 비닐파일에 끼워 연주했는데, 악보를 넘길 때마다 비닐 소리가 많이 거슬렸다. 종이 넘기는 소리도 악보 넘길 때 주의하지 않으면 크게 나는 편인데, 비닐 소리는 더더욱 이질적이어서 조심성 없이, 본인이 피아노 연주 이위에 어떤 부가적인 소리를 내는지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연주하는 것 같아 그것이 아쉬웠다. 이 곡에 대해서는 후술 할 세미나 리뷰에 구체적으로 언급할 예정이다. 곡에도 그리고 프로그램 노트에도 많은 사람들에게 비판받을 수 있는 요소를 써놓았는데, 이를 보며 과연 우리가 기대하고 추구하는 현대음악의 현재와 미래는 무엇인가 싶었다. 21세기의 곡이라는 생각이 드는 곡은 분명 아니었다. 특별한 것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직접적으로 언급하자면 오히려 토론에서 잡아먹힐 내용이 더 많았다. 우리의 판단하는 기준과 잣대가 무엇인지 다시금 생각하게 되는 곡이었다.

 

인터미션 전 마지막곡은 김유리 작곡가의 작품 “농담 II” 였다. 국악 현악기와 서양 현악기의 만남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동서양의 악기를 조합해 쓰인 곡들은 이미 셀 수 없이 많지만 악기들 간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곡에 자연스럽게 스며들게 쓴 곡은 생각보다 찾아보기 힘들다. 그만큼 어렵다는 이야기다. 이 곡에서는 해금이 본연의 음색을 그대로 유지했다. 서양음악적 리듬과 멜로디의 요소를 지녔지만 악기는 동양의 소리를 그대로 만들어냈다. 어쩌면 전체 소리는 이 때문에 이질적이었다고 볼 수 있다. 국악이면 국악, 오케스트라면 오케스트라로 우리의 귀는 분리되어 훈련되어왔기 때문에 두 개를 같은 맥락으로 매치시키는 것은 음향학적, 문화적으로도 아직은 불가능한 것이 사실이다. 많은 작곡가들이 아직도 서양과 동양의 다른 음색을 조화롭게 하기 위한 아이디어를 진부함에도 불구하고 많이 도전하고 있는데 이때 대개 동양적 아이디어를 서양악기에, 서양적 아이디어를 동양 악기에 삽입하며 서로의 흉내를 통해 서로 가질 수 없는 부분을 보완하려고 하는 방식에 항상 갇힌다. 김유리 작곡가의 곡은 그런 면에서는 해금이 본인만의 소리를 유지하며 서로 다름을 인지하고 그대로 드러내려 한 것 같았다. 이는 오히려 청중에게 교육과 경험에 의해 습관화된 음색의 상상력에 질문을 던지는 방식이 되었다. 특히 교육적 체계에 갇혀 사는 작곡 전공의 청중들에게 이질적이면서도 위에 언급한 조화의 뻔한 방식의 탈피를 요구했다. 이는 위의 편도아 작곡가의 곡처럼 우리 귀의 ‘현재’는 어디에 있는가를 다시금 생각하게 하는 작품이었다. 우리는 과연 청중으로서 현대음악에 무엇을 요구 또는 기대하고 있으며 반대로 작곡가들은 사회 안에서 어떤 역할을 하고 싶은 것인지. 

한가지 더 덧붙이자면 타악기의 소리 발란스는 아쉬웠다. 좀 더 두드러지게 보이는 부분이 있기를 기대했었다.

 

인터미션 후 17시, 저녁이 될 즈음 개막 연주회의 네번째 곡이 시작되었다. 대구에서 어떤 저녁에 듣는, 손현준 작곡가의 작품 “스코틀랜드식 아침식사” 였다. 편도아 작곡가가 ‘C’ 라는 음에, 김유리 작곡가가 ‘A’ 라는 음에 집중하였다면  손현준 작곡가 선택한 중심음은 ‘D’ 였다. 민속적 색채가 담겨있는 곡이었기에 접근하는 방식은 앞의 두곡과 전혀 달랐지만 제목에서부터 전해오는 진한 색채가 있었다. 제목과 곡이 명확하게 일치되었다. 궁금증을 유발하기보다는 스코틀랜드식은 이런 것인가 지나가듯이 들을 수 있는 그러한 곡이었다. 동시에 한국인이 한국에서 저녁시간 콘서트에 스코틀랜드 민족적 느낌이 담긴 곡을 발표한다는 것은 과연 어떤 의미일까 사회문화적, 인식적 질문이 떠올랐다. 대부분의 작곡가들이 본인이 경험한 것을 본인의 소리와 방식으로 곡 안에 담아낸다면 손현준 작곡가의 방식은 기존에 있던 소리를, 들었던 경험을 다시금 본인의 말을 통해서 정리하는 마치 어떤 글을 엑섭 연습하는 작업과 같은 것이었다. 역사적으로도 많은 작곡가가 다른 음악과 다른 소리에 대한 경험을 통해 곡을 썼는데 손현준 작곡가의 곡은 스코틀랜드의 방식을 고수하면서도 너무나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을 담아냈던 것이 아닌가 그런 기분이 들었다. 

 

팀슨Michael Sidney Timpson의 현악 3중주 “Disparate measures” 는 다악장으로 구성되어있었다. 가장 길었던 첫 악장을 제외하고는 단편적인 프라그멘트Fragment 형식으로 마치 소품을 연결시킨 느낌이었다. 현악기의 주법에서 특별한 것은 사실 없었다. 주법 자체만 놓고 본다면 20세기 초반 곡이라고 해도 이상함을 감지하지 못했을 것이다. 피치카토와 바르톡 피치카토들이 주가 되는 부분에서 재즈 풍의 화음들을 많이 인용했는데 초반에 등장하지 않았던 음의 구성 요소들을 등장시키면서 새로운 것들을 보여주려 한 시도를 감지할 수 있었다. 

 

마지막 곡은 두 악장으로 구성된 퀑Charles Kwong의 피아노 트리오를 위한 “그 숲도 당신을 응시하고 있다The forest also gazes into you”였다. 시작은 피아노 트리오라는 편성에서 기대할 수 없는 타악기적 소리가 주를 이뤘다. 현악기는 손가락으로 최대한 현을 짧게 하여 튕겼고*** 피아노는 미리 준비된 댐프를 이용하여 음고를 거의 나지 않게 사용되었다. 즉 피아노가 건반을 치는 타악기로서의 기능을 하게 했는데 이는 2분가량 지나서야 시작된 피아노의 평범한 소리를 특별하게 했다. 이 변화는 청중을 더욱 무대에 그리고 소리에 집중하게 했다. 두 번째 악장에서는 배음이 많이 등장하도록 현악기의 주법****을 단조롭게 썼다. 마치 복합적인 음의 면적이 채워지도록 하는 악장이었다. 두 악장 모두 짧고 간결했는데 복잡한 구조적인 생각보다는 간결하고 적은 주법들을 통해 그 순간의 소리에 통일성을 주었다. 개막 연주회의 마지막으로서 쌈박하면서도 다음을 기대하게 하는 그런 곡이었다.

 

첫 연주회는 이로써 막을 내렸다. 판데믹으로 인해 서로간의 접촉을 최소한으로 해야 했기에 연주회가 끝난 후 서로 간의 대화도 어려웠다. 그러나 음악회의 첫날에 두 개의 연주회가 기획되어있었기에 아쉬움보다는 다음 연주회의 기대가 더 컸다. 

 

 

 

* 프로그램북을 나눠주지 않은 것은 환경적인 이유에서였다. 홀에 입장하니 무대 뒤에 있는 스크린에는 QR 코드가 준비되어 있었는데 이는 종이를 아끼자는 취지로 만들어진 온라인 프로그램북에 접속하기 위한 링크였다.

https://dcmf.modoo.at

각 링크마다 상세한 안내가 있었다. 후에 작곡가들과 관계자들은 출력된 프로그램북을 받았지만 청중의 입장에서 유료라도 원하는 사람은 소지할 수 있게 하면 어떨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환경을 보호하자는 취지는 정말 필요하고 중요한 부분이었지만 연주회 프로그램을 꾸준히 모아 왔던 사람으로서 내가 청중이었다면 (결과적으로 작곡가로서 프로그램북을 받았지만) 프로그램북을 물건으로 소지할 수 없다는 것은 상당한 아쉬움이 남았을 것 같다.

 

** 후에 개인적으로 작곡가에게 질문한 결과 ‘이것’은 악기가 아닌 개인적으로 구입한 어떤 도구였다. 그것도 너무나 흔히들 아는, 저렴한 물품을 살 수 있는 곳에서 전혀 다른 용도로 쓰이는 도구였다! 둥글고 긴 모양의 물체를 뒤집어 악기로 사용한 것이었다. 쨍한 양철 소리가 귀에 남을 정도로 기발했다.

 

*** al dito / pizzicato

 

**** molto sul ponticello

 

 

제 31회 대구현대음악제가 열렸던 대구 콘서트하우스에서 매일 매일 체크해야했던 체온, 마스크 그리고 안심콜

 

종이를 아끼기 위해 만들어졌던 제 31회 대구국제현대음악제 온라인 프로그램북 QR코드

 

안전거리를 유지해야했던 홀 내부 객석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