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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음악사회

한국 현대음악사회, 그 소통의 장에 뛰어들기 위해.

by 철학하는 광대 2016. 8. 12.

현대음악사회에 뛰어들려면 곡으로 승부해야지, 글을 쓰고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 이유를 생각해보면 답은 간단하다. 작곡가로서 오선지에 음표를 그리는 것이 아니라 빈 종이에 글씨를 적는 이유는 결국 음악에 대해 이야기하기 위해서다. 글이 조금 서툴더라도 작곡가로서 사회 안에서 말하지 않고 쓰지 않으면 많은 것들을 놓치게 된다. 내가 이제 막 30대에 접어든 작곡가로서 바라본 우리의 현대음악사회는 비판할 것이 너무 많아 다른 작곡가들을 만나면 우리 세대가 해야할 일들을 나열하기 일쑤고 현재 모습에 비판을 넘어선 비난을 쏟아붓는 날도 허다하다. 그러나 쉽사리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며 확고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사람은 적다. 첫번째로 그만큼 자신의 의견이 강하게 피력할 정도로 스스로도 분명하지 않은 경우가 많고 두번째는 자신의 곡을 쓰느라 나몰라라 하는 경우, 그 이외에도 핑계는 여러가지가 있다. 특히 상하관계가 분명한 우리나라의 문화에 자신의 의견을 쉬이 못 내놓는 경우. 그러나 분명한 것은 많은 젊은 작곡가들이 조금 더 깨인 눈으로 사회를 바라보고 비판하고 투쟁하고 도전하려 한다는 것이다, 한국 현대음악이 발전된지 꽤 많은 시간이 흘렀고, 전세계에 셀 수 없이 많은 작곡학도들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왜 수많은 학생들이 현재 음악사회에 만족하지 못하고 무대에 설 기회조차없다 느끼는지. 안타까울 뿐이다. 그렇다고 나 또한 20대를 오로지 나만을 위해 살았기 때문에 아쉬운 건 마찬가지다. 그러나 이제 20-30대가 변하지 않으면 다음 세대 또한 변하기 힘들다고 느낀 이후, 내가 작곡가로서 할 수 있는 일을 하려한다. 그 첫번째가 소통의 장에 뛰어들 것,
소위 현대음악을 하는, 아는 사람들이라면 인터넷에 글을 올리는 몇몇 사람들을 굳이 여기 언급하지 않아도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그에 관해서는 나중에 이야기할 기회가 오리라 생각된다). 그 외 페이스북에 주구장창 올라오는 비판의 글들. 사회문제를 정확히 파악하고 비판할 수는 있었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그 비판의 뒤에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하고 조금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자신의 시간을 투자하는 사람들은 극히 적었다. 결국 그들도 자신의 위치와 자리에서 할 수 있는 것들이 많지 않았고, 그 입장과 이 사회가 불만족스럽지만 바꿀 수 있는 건 많이 없었던 것 같다.

내가 처음 한국 현대음악을 접한 건 고등학교 때, 귀국하지 얼마 안된 두 작곡가의 작품발표회였는데 그 이후 가능하면 많은 연주회를 보려고 했고 들으려했고 또한 현대음악에 관한 텍스트와 연주회에 대한 리뷰를 읽고 싶었지만 그냥 아무것도 없다고 보면 됐었다. 그나마 가장 희망적이었던 건 "오늘의 작곡가, 오늘의 작품"이었다. 손바닥만하고 너무나 얇은 그 책이 가장 현대적인, 현대음악을 이야기하는 책이었다. 대형서점에서 발견한 뒤 나올 때마다 봤었는데 지금은 어찌되었는지도 누가 읽기나 했었는지도 모르겠다. 주변의 작곡 전공 친구들에게 물어봐도 거의 다 몰랐다.
한국 현대음악이 아닌 다른 나라의 현대음악에 관한 건, 정말 한국어로 접할 수 있는 1950년대 이후 작곡가들의 글들은 거의 없었다. 스스로 외국어를 습득하고 원어나 영어 번역본으로 읽는 수 밖에 없었다. 아도르노의(Theodor W. Adorno) 신음악의 철학(Philosophie der neuen Musik, 1949)을 약 5-6년 전에 구하려고 했을 땐(세창출판사에서 새 번역본이 나오기 전), 까치글방에서 나온 것이 절판되어 누구에게 부탁해 도서관에서 빌린 후 복사제본을 하기도 했다. 그러니 1950년대 이후 세계 여러작곡가들의 글이 번역되어나온다는 것은 기대조차하기 힘든 일이었다.
거기에 추가로, 한국 현대음악 악보와 음반출판은 도대체 어디 있는가? 내가 가진 것들도 다 부탁해서 얻은 경우이지 살 수 있는 경우는 거의 못 봤다. 최근 project21and에서 여러 방법으로 시도 중인 것 같은데, 그것이 향후에는 결코 어떤 단체나 협회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당연한 '일반화'가 되어야할 것이다.

이제는 바뀌어야 한다. 이미 자리 잡은 기성세대 작곡가들이 젊은 작곡가들의 곡을 평가하고 심사하는 그런 분위기도 유지하되, 반대로 기성세대 곡을 비판해줄 젊은 작곡가이자 비평가들이 필요하고, 그 세대 간의 소통은 더 활발해져야한다. 예술에는 나이가 없기 때문에, 작곡가 대 작곡가로서 마주할 땐 체면도 나이도 예의도 없이 자유로워야한다(비난과 비난이 마주해서 소통이 되려 안되어 전쟁 일으키자는게 절대 아니다). 그리고 향후 더 젊은 세대를 위해 연주회를 만들고 기회를 주어야하며(이부분은 특히 윗 세대에서 하지 않으면 안 될, 사회적 의무라고 생각한다), 언어적 문제없이 세계 여러나라 작곡가들의 텍스트와 미학에 관한 지식을 얻을 수 있도록 지식의 장 또한 열려야한다. 당장 1-2년 안에 해결할 수 없는 일이라 더 계획적으로 긴 미래를 내다보고 나가야한다.

이 글이 누군가에게도 자극을 주었으면 좋겠다. 나 말고 또 다른 사람이 일어서 더 큰 소통의 장을 열어주기를. 전 세계 작곡 학도들이 일어나 자신 있게 자신의 예술 세계를 구축하고 깊이 있는 대화가 스스럼없이 오가는 사회를 꿈꾸며.


2016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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